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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Y _ WIRE 지 리뷰 2007-01-07
Jason Khan 조회 : 4,479,
http://themanual.co.kr/zb5/?article_srl=133


이번달 WIRE지에 저번 3월에 있었던 In RELAY _ Signal to Noise tour 에 대한 한페이지 짜리 Jason Kahn의
리뷰가 실렸습니다.




세계 곳곳의 음향을 찾아서. 이 달에는 즉흥 연주자 제이슨 칸이 한국의 프리 뮤직 단체인 릴레이를 방문했다.

나의 친구들이자 즉흥연주자인 귄터 뮐러, 노르베르트 뫼슬랑, 토마스 코르버, 크리챤 베버와 함께 한 2주간의
피곤한 일본 투어가 끝나고 나서, 서울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예기치 못한 즐거움에 대해 나는 거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우리는 원래 스위스 문화청(Swiss Arts Councils)의 아이치 세계 엑스포에 대한 지원의 일
부로 일본 투어만을 할 예정이었다. 나는 빌 애쉴라인과 연락을 하곤 했는데, 그는 서울에 산 지 10년이 넘었기
때문에, 나는 무심결에 그에게 어느 날 서울에서 이런 종류의 공연을 누가 조직하고 있는 지에 관해서 물어보았
다. 빌은 즉시 나를 릴레이의 연주자들과 연락이 닿게 해주었고, 그래서 3월16일과 17일의 공연이 이루어졌다
(크리스챤은 서울에 올 수 없었다).

나는 일본 투어의 마지막 날을 내 친구들인 토시, 키쿠코와 함께 도쿄 시모키타자와 구에 있는 <이름 없는 술집>
에서 보냈다. 나는 다음 날 이 술집에서 바로 공항으로 갔기 때문에, 서울로 들어서는 길목에서 여전히 잠에서 깨
어나지 못했다. 김포공항[사실은 인천공항]에서 호텔로 가는 길에는 흐릿한 회색 습지와 넓은 끝없는 시멘트 고
속도로만 보였다. 공항리무진에서 내려 보니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근처 가게에서 나온 제복을 입은 두 남자가
8차선 도로 한가운데서 맨홀 뚜껑을 겨우 열고 있는 장면이었다. 내가 보기에 여기 한국에서는 일을 다르게 하는
것 같았다. 그 시점에서 내가 꿈을 꾸고 있었는지 확실치 않지만.

우리의 첫 번째 공연장인 떼아트르 추는 호텔에서 멀지 않았다. 나는 도쿄로부터의 후유증 같은 혼수상태에서 깨
어나면서 서울의 거리에 움직이는 사람들의 삶에서 에너지를 느끼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더 시끄럽고 덜 가공된
것처럼 보였다. 곳곳에서 여전히 공사가 진행 중이었고 흙탕물 웅덩이 때문에 계속 가기가 힘들었다. 우리는 장
비를 들고서 어둠을 뚫고 나가 소극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탁자와 연주 장비들이 무대를 메우고 있었다. 나는 결
국 릴레이와의 연락책이었던 연주자 최준용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장비를 세팅하고 짧은 사운드 체크를 한 후에 최준용과 함께 요깃거리를 찾아 나갔다. 우리는 찌게를 파는
식당에 들어갔고 그 가게가 전문으로 하는 요리인 버섯 매운탕을 시켰다. 나는 로스엔젤레스에서 자랐기 때문에
한국 음식은 낯선 이국의 음식이 아니지만, 버섯 매운탕은 처음 먹어본 맛 이었다! 뜨거운 찌개 국물이 나를 깨우
기 시작하였다. 귄터의 얼굴은 점점 벌게지더니 이마에는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벽에는 손님들이 그려놓은 낙서
가 가득했다. 맥주를 마시면서 모두들 기분이 좋아 보였고 피곤이 풀리면서 저녁 공연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노르베르트 뫼슬랑과 최준용의 첫 번째 세트 시간에 딱 맞춰 공연장으로 돌아왔다. 노르베르트의 ‘고장난
일상의 전자기기’들은 준용의 분해된 씨디 플레이어의, 밖으로 드러난 회로기판과 믹서 조작에 잘 맞아 들어갔다.
그 다음은 토마스 코르버와 오랫동안 서울에 거주하고 있는 조 포스터의 세트였다. 조 포스터는 트럼펫과 마이크,
믹서, 그리고 알 수 없는 여러 가지 물건들을 가지고 연주하였는데 이때쯤이 되자 객석은 가득 찼고 릴레이의 연
주자들은 웃기 시작했다. 아마도 이번 공연은 그들이 주최하는 가장 큰 이벤트 중에서 하나일 것이다.

릴레이가 주최하는 모든 다른 공연들처럼 이날 공연도 입장료가 없었다. 최준용이 말하기를 “우리가 입장료를 받
으면 아무도 오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외국 연주자들이 한국에서 관광 비자를 받고 입국해서 연주하는 곳에서
입장료를 받는 것은 불법”이라고 한다. 바로 이 같은 이유 때문에 서울의 실험 음악 씬의 중요 인물인 일본인 연
주자 사토 유키에가 출국조치를 당했다고 한다. 작년에 그가 주최한 공연에 두 명의 사복 경찰이 와 있다가 그를
그 자리에서 적발하여 5년간 출국시켰다고 한다. 그는 운이 좋았고, 또한 한국 사람과 결혼을 해서 지금은 한국에
돌아와 있지만, 최근에 있었던 다모 스즈키의 공연도 비슷한 이유 때문에 취소되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서울의
연주자들에게 공연을 조직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들은 계속해서 공연을 하였고 서울문화재단으로부
터 기금을 지원받게까지 되었다. 그 덕분에 우리가 서울에서 공연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토마스와 조의 세트는 열렬한 박수를 받았다. 나는 진상태와 바로 다음에 연주하였는데 그는 하드디스크와 랩탑,
단파 라디오로 연주하였다. 노르베르트는 상태의 하드웨어 더미를 보면서 웃음 지었지만 곧 “고장난 CD플레이어
와 하드디스크면 충분하지 왜 랩탑 컴퓨터가 필요하지?”라고 물을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컴퓨터가 잘 보급된 나라 중 하나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리 이상할 것도 없을지 모른다. 어쨌든 상태의 소리는
디지틀한 소리의 변형보다는 다듬어지지 않은 아날로그 사운드를 더 강조하는 것이었다.

저녁 공연이 반환점에 이르면서 귄터 뮐러와 사토 유키에의 세트가 시작되었다. 유키에는 1980년대 뉴욕의 다운
타운 씬에 더 가까운 취향을 가진 기타리스트였는데, 처음 봤을 때에는 뻔한 방식으로 잘못 짝 지워 놓은 세트 같
았지만 불협화음 속에서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유키에는 릴레이의 다른 연주자들과는 사뭇 다른 접근법을 보
이고 있지만 그는 서울의 실험 음악 씬이 발전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빌 애쉴라인은 “유키에의 역할이 정
말로 결정적이었다”고 말한다.

유키에는 한국에서는 그의 싸이키델릭 락 그룹인 곱창전골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곱창전골의 모든 멤버는 일
본인이었지만 유키에는 한국어로 노래를 하였다―한국에서 그런 종류로는 첫 하이브리드 그룹일 것이다. 그는
또한 즉흥 음악에 계속해서 관심을 갖고 있다가 2003년에 불가사리라는 이름의 공연을 조직하기 시작했다. 여
기서 나중에 릴레이의 연주자들이 더 전자음악적인 방향으로 나가기 위해 분리해서 나오게 된다. 유키에의 주도
하에 독일인 색소폰주자인 알프레드 23 하르트에서 프리 임프로바이제이션 트럼펫 연주자인 최선배에 이르는
다양한 스타일의 연주자들이 현재의 릴레이 연주자들 몇 명과 함께 매달 여기저기의 바와 카페에서 연주를 해
왔다. 일본 연주자들과 연락을 하여 유키에는 루인즈, 카와바타 마코토, 유코 넥서스6, 이치라쿠 요시미츠, 토시
마루 나카무라, 오토모 요시히데와 사치코 엠 등의 연주자들을 서울로 초청할 수 있었다. 이렇게 유지된 일본과
한국의 실험음악 씬의 관계는 오토모 요시히데가 릴레이의 몇몇 멤버들을 도쿄로 초대하여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날 공연의 다음 세트는 토마스, 노르베르트, 그리고 믹서 전문가인 홍철기의 연주였다. 홍철기의 피드백이 토
마스와 노르베르트의 두꺼운 소리를 꿰뚫었면서, 결과적으로 엄숙한 음악이 나왔다. 지금까지 모든 세트는 놀라
울 정도로 좋았고 음악은 신선했으며, 관객들은 공연에 집중하였다. 사운드도 좋았다.

이제 이 날 공연의 마지막 세트에서 귄터와 함께 릴레이를 조직하고 있는 주요 인물인 류한길과 연주를 하게 되
었다. 한길은 분해된 괘종시계에 컨택 마이크를 달아서 컴퓨터에 작성해놓은 여러 패치들로 소리가 입력되도록
하였다. 시계가 가는 소리와 톱니바퀴 돌아가는 소리가 공연장 전체를 하나의 큰 기계로 만들어버렸다. 우리는
글자 그대로의 의미에서 서울에서의 기억에 남을 첫 번째 날이 끝나간다는 것을 알려주는, 시간이 천천히 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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