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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제이, 블로그 그리고 리믹스 2007-01-07
허서정 조회 : 4,477,
http://themanual.co.kr/zb5/?article_srl=129

[ 이글은 전주국제영화제 매거진의 '디지털 시대의 아우라' 특집을 위해 기고한 글입니다.]

디제이, 블로그 그리고 리믹스



컴퓨터를 켜고 웹브라우저를 열어 구글페이지를 들여다 보는 것으로 나의 하루는 시작된다. 취향에 맞는 정보와
관심있는 URL의 새로운 포스팅이 뜨게끔 홈페이지를 ‘개인화’시킨 덕분에 오늘의 주요뉴스, 즐겨찾는 블로그의
새로운 포스트, 서울과 뉴욕의 날씨정보, 그리고 ‘사랑’이란 키워드로 검색되는 현재의 웹서치 결과를 한눈에 훑
어보게 된다. 본업으로 삼고있는 미디어 아트와 그 외 잡다한 개인적 관심사를 담아내는 (업데이트가 좋지 않고
독자를 거의 염두에 두지 않는다는 점에서) 불건전한 블로그 사이트를 갖고 있는 덕에 이렇게 찾아낸 정보들 가
운데 흥미를 끄는 몇몇을 토대로 일부는 나의 블로그에, 일부는 소셜 북마킹 사이트인 딜리셔스(del.icio.us) [i]
에, 그리고 일부는 참여하고 있는 온라인 포럼 사이트에 포스팅을 올리고 어떤 방식이로든 공개하고 싶지 않은
내용의 일부는 관심을 가질만한 친구에게 이메일로 보내버린다. 짧은 시간내에 건져 올린 누군가의 텍스트와 이
미지, 음악파일 혹은 사이트의 정보를 잘게 부수고 나의 생각과 재조합 함으로써 내 자신 또한 웹의 끊임없는 정
보생산라인에 합류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정보의 리믹스를 생활화한다.



음악을 만들어내는 하나의 방식으로써 흔히 힙합 뮤지션이나 일렉트로닉음악 디제이가 시도했던 ‘리믹스’는 방대
한 정보 가운데 원하는 부분을 선택하고 특정한 방식으로 재구성, 재조합해내는 창작을 위한 메타구조적 접근방
식이다. 리믹스는 디지털 미디어환경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조건, 즉 컴퓨터, mp3 플레이어, 핸드폰
등의 다양한 개인미디어를 사용하여 엄청난 속도로 불어나는 정보를 수용하고 유통시키고 재가공하는 행위를 반
복하게 되는 현실이기도 하다. 개인 블로그와 아이튠, 위키와 지식인 검색, 댓글달기와 펌질, 사진공유 서비스인
플리커(Flickr), 소리바다와 짱공유. 이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가 행하고 있는 일상의 지식공유 방식이자 문화
적 의미생성 과정이다. ‘협력적 리믹스’라고 명명할 수 있는 이러한 일련의 행위들은, 디지털이란 공통분모로 균
질화된 다양한 정보를 개인의 공간안에 끌어와 재가공하고 이를 또다시 사회적 맥락으로 이동시키는 가운데 개인
적인 것을 사회적인 것으로 끊임없이 전환시키게 된다. 즉 리믹스는 정보의 공유를 의미하고 문화의 개인화를 의
미한다.


예술가와 리믹서(re-mixer)


피카소가 위대한 이유는 미술사의 역작 게르니카를 그려서도 일만개에 가까운 작품을 남겨서도 젊은 여성들과의
쉼 없는 사랑을 불태워서도 아니다. 그는 1912년 종이와 물감, 그리고 헝겁을 캔버스에 붙여버리는 콜라주 작업
을 선보임으로써 20세기 초 ‘리믹스’ 신화의 첫 페이지를 열었다. 이후 다다(Dada)에 의해 써내려진 이종집단간
의 결합과 접붙이기 전략은 세계대전으로 황폐해진 삶과 불합리한 세계를 향한 그들의 역설이었던 한편 절대성을
상실한 인류 가치에 대한 예술가들 공동의 대응책이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뒤샹의 ‘레디메이드’는 일상의 오브제
를 갤러리라는 숭고한 공간에 옮겨옴으로써 예술의 순수성과 작가의 신화를 해체하려는 시도였을 뿐만 아니라, 이
미 존재하고 있는 일련의 사용성들을 (변기, 자전거 바퀴, 병걸이, 다빈치의 모나리자 등) 다른 층위의 가치체계와
섞어버림으로써 (예술작품으로서 전시라는 상황전개 혹은 수염 그러넣기)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일종의 리믹
스적 시도였다. 흔히 ‘차용’이라고 일컬어 지는 이러한 전략은 순수성과 진정성(authenticity)을 향한 모더니즘의
절대적 신봉체계를 거부하기 위해 채택되었으며, 앤디 워홀의 ‘캠벨수프’ 시리즈나 포토몽타쥬 작업들에서 보여지
듯이 팝아트의 애정어린 생계수단이기도 했다.



이후 사진과 비디오 아트에서 지속되었던 리믹스의 전략은 (미술사에서는 흔히 차용, 모방, mimicry 라는 표현과
제휴한다) 백남준이 1984년 <굿모닝 미스터 오웰>에서 보여주었던 라이브 퍼포먼스에서 더욱 효과적으로 드러났
다. 위성 네트워크로 세계에 생중계된 이 작품은 샬롯 무어만, 존케이지와 같은 동료 작가들의 모습과 TV 프로그
램, 한국과 일본의 고전무용과 음악을 교차편집하면서 스스로 만들어낸 영상이 아닌 기존의 이미지들을 비디오
신디사이저로 제어함으로써, 마치 현대의 디제이와 마찬가지로 음악적 리듬에 기반한 이미지 믹싱을 시도한 것이
다. (여기서 작가는 테크니션처럼 다이얼을 돌리고 스위치를 조작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과거의 리믹스를 둘러싼 이와 같은 일련의 개념적인 시도들은 ‘디지털’이란 기술적 환경을맞아 더 이상 전략이 아
닌 일상의 조건이 되었다. 미디어 이론가 레브 마노비치가 역설하듯이 전자적 예술(electronic art)에서 드러나는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는 바로 ‘이미 존재하고 있는 시그널의 조작’을 통한 창작활동이다. 즉 놀라운 상상력과
천재성으로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메뉴 가운데 원하는 가치를 선택해 나감으로써 창의적
결과물을 끌어내는 것이 뉴미디어의 속성이라는 것이다. [ii] 예컨대 블로그 포스팅을 위해 둘러보았던 수많은 사
이트 가운데 원하는 구절을 잘라내고 이에 적절한 이미지를 라이브러리에서 선택하고 보라색의 텍스트를 덧붙여
써내린 후 블러한 이미지 이펙터를 추가하여 클릭함으로써 나의 짧은 글이 완성된다. 바로 선택을 통한 저작이다.
이는 앞서 보았던 것처럼 아날로그 미디어에서도 드러나지만 ‘포토샵 예술’이라고도 칭해지듯이 디지털화를 통해
더욱 가속화, 일반화되고 있다. 데이터베이스와 라이브러리가 담고있는 정보의 단위는 실로 엄청나며 ‘웹’은 정
보의 방대한 저장고로서 이러한 현상을 가장 극명히 드러내고 있는 매체환경이다. 여기서 우리는 수많은 음원들
의 데이터베이스에서 뽑아낸 트랙들을 실시간으로 믹싱하는 디제이의 모습을 연상할 수 있다. 기존의 요소들을
단순히 섞는 것이 아니라 음악의 원작자와 특정한 컨텍스트(파티와 관객의 성향, 분위기 등)를 절묘하게 매개하
는 ‘매개자(medium)’으로서의 디제이는 컴퓨터 문화의 대두와 함께 등장한 새로운 종류의 ‘작가’를 상징하는 아
이콘이다. 사람들은 클럽과 파티에서 노래를 하는 가수나 연주가에게 환호하는 대신 턴테이블을 돌리는 디제이
에게 열광하기 시작했다.



웹 프로젝트 <사운드 트랜짓 (Sound Transit)>[iii]은 자신이 원하는 가상의 여행경로를 소리를 통해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이다. 사람들에 의해 세계 이곳저곳에서 실제로 채취된 소리들과 그 장소에 대한 사적인 경험에
관한 메시지가 모이고, 이는 가상의 소리여행을 떠나거나 혹은 사운드소스를 이용해 다른 작업을 하고자 하는 누
구에게나 사용할 수 있도록 열려있는 사운드 라이브러리를 구성하게 된다. ‘겨울이 깊어가는 핀란드 헬싱키의 지
하철에서 녹음된 엠비언스는 기차역으로 이어지는 터널과 함께 공명효과를 더해갔다’라는 메시지와 함께 보내진
‘헬싱키 언더그라운드 mp3’ 파일은 헬싱키의 소리를 듣고 싶은 사람이나 이런 특별한 사운드를 찾고자 하는 사람에
의해 다시 쓰여진다. 협력적인 온라인 공동체로서 <사운드 트랜짓>은 일종의 소리저장창고이자 경험공간으로서
이 사이트를 방문하고 이용하는 사람들은 그 과정을 통해 각자 다른 수위의 창작활동에 동참하게 된다. 작가는 자
료공유와 또 다른 작품창작을 가능케하는 플랫폼을 만들고 사람들을 매개하는 역할을 하는 매개자(medium)이자
타인의 창작물을 이용하는 전유자(appropriator), 동시에 공동의 협력작업을 이끌어내는 영리한 조력자(collaborator)
인 셈이다. 또한 이 과정에 함께 참여하는 사람들은 때론 결과물을 감상하는 관객으로서, 때론 선택과 선별과정을
통해 작품창작에 참여하는 공동저자로서 프로젝트에 동참하게 된다. 이러한 작가와 관객, 혹은 공동저작자로서의
역할혼용은 비단 미디어아트 뿐만 아니라 최근의 다양한 예술창작 활동에서 드러나는 현상이다. 작가는 완결체로
서의 오브제가 아닌 새로운 경험과 사유가 가능한 유동적이고 열려있는 플랫폼을 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작품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창의성과 독립적인 경험의 가치들을 동시에 작품에 담아내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예술시장와 공동저작



근현대 미술사에 있어 다양한 운동과 ‘이즘’으로 분류되는 미술사적 계보를 써내려가는 주체는 개개인으로서의 예
술가이다. 독창성과 창조적 비전, 아우라로 불리는 일련의 개념들은 바로 이러한 개개인에게 부여된 천재성과 존
재자체에 대한 신화로 귀결된다. 바로 지난 세기동안 시각문화를 주도해온 작가영웅주의적 경향이다. 그러나 디
지털 혁명은 ‘창조적 주체’에 대한 새로운 사고의 씨앗을 퍼트리기 시작했다.
저자 시바 바이다나탄(Siva Vaidhyanathan)은 “특정한 크리에이터 계급이 존재한다는 신화가 깨어지고 있으며 모
든이가 창조적 환경에 동참하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저작툴 소프트웨어의 개발과 웹을 통한 정보접근의 용이성,
네트워크를 통한 정보교류의 가속화 등이 이끌어낸 결과이다. 특히 공동저작이라는 개념은 개개인에게 부여되는
신화적 가치, 이를 기반으로 형성되는 재화가치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예술시장에서 거부할 수 밖에 없는 개념이기
도 하다. 예술작품의 (재화)가치가 생성된다는 것은 우선 관객과 만나고 자신의 작업을 소통시키기 위해 화랑을 통
해 활로를 뚫고 유통을 증가시킴으로써 가치를 키워가다가 작품의 ‘무덤’이라고 불리는 미술관에서의 인증절차를
거쳐 작가 자신의 역사적 사회적 예술적 위치를 굳히는 일련의 단계를 의미하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예술활동
은 상품으로 인식되고 작품의 예술적 가치는 몇몇의 갤러리스트와 큐레이터가 매기는 기준에 의해 결정되며, 소위
‘팔리기 힘든’ 작품은 갤러리의 벽에 한번 걸리는 일 없이 작가의 스튜디오에서 영원히 잠들기도 한다.



이러한 미술품의 ‘시장메커니즘을 통한 사회적 유통’을 거부하며 대안적 활로를 모색한 시도들 가운데, 인터넷이라
는 환경을 작품의 재료이자 유통경로로 이용한 장르가 ‘넷아트’ (혹은 웹아트)이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웹상에
서 제작하고 전시하기 시작했으며 이는 갤러리라는 중간 매개자 없이 바로 관객들에게 다가갈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유토피아적인 낙관을 품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더 잭 (The Jack)> 프로젝트는 넷상의 가상정체성과 블로
그 플랫폼, 퍼포먼스를 절묘하게 결합시킴으로써 웹의 이 같은 매커니즘을 적절히 활용하고 있는 예이다.[iv] 그는
빅사이즈 토끼탈을 쓰고 (가면을 쓰고 있으므로 그녀인지 그들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대한민국의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공중화장실에서 잠든다던지 UFO를 만나기 위해 활주로를 서성인다던지 하는 기묘한 행동을 일삼는 자
신의 모습을 매일 블로깅한다. 동시에 (시키지도 않았는데) ‘더 잭’의 모습을 사진이나 만화, 드로잉, 심지어 음악과
뮤직비디오로 만들어내는 다른 사람들의 포스트를 긁어 모으고 그들과 덧글을 주고 받는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자
체를 일종의 퍼포먼스 아카이브처럼 자신의 블로그에 매일 업데이트하는 가운데 그는 자신의 행위와 그 행위를 소재
로 새로운 작품을 쏟아내는 사람들 간의 유희적 교류를 생성해낸다.



이같이 새롭게 등장한 매체환경을 작품의 근간으로 삼는 미디어 아트에 있어 큐레이터, 작가, 비평가, 그리고 관객
이라는 전통적인 분업방식은 종종 혼란을 겪게 된다. [v] 관객이 작품을 보고 감상하는 과정 자체가 작품을 만드는
조건이 되어버림으로써 완성된 결과물로써의 오브제 보다는 작품-관객-작가 간의 인터랙션이 일어나는 과정이 작
품의 중심이 되고, 작품제작을 위해 필요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은 작가를 위한 테크서포트가 아닌 공동작업자
혹은 협력자로 자리매김 된다. 특히 테크놀로지와 예술적 창의성 간의 교배를 통해 탄생한 미디어 아트에 있어서
‘협력’ 이나 ‘공동작업’은 단지 트렌디한 캐치프레이즈가 아닌 새로운 테크놀로지와 전문 과학기술지식을 요구하는
작업을 위한 필요이자 충분조건으로 떠올랐다. 작가 스스로도 스튜디오에 머물며 영감을 통해 창작을 불태우는 자
폐형 보다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새로운 창조적 가능성을 타진하는 대화형이 될 때 실효를 거두
게 된다. 관객의 역할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참여를 통해 스스로 작품의 일부가 되어 작품을 만들어나가는 역할을
부여받게 된 기존의 ‘관객(spectator)’은 작품의 내러티브를 스스로 써 나아가거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거나, 작
품을 교란시키거나 혹은 자신의 일상을 살아가는 방식으로 행위자(performer)의 성격을 띠게 된다.



미국의 사이버법학자 로렌스 레식에 의해 만들어져 지금은 많은 국가에서 사용하고 있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스
(Creative Commons) 라이센스는, 온라인 상에서 정보교류와 컨텐츠 공유는 피할 수 없으며 궁극적으로 예술적 창
의성을 증가시킨다는 믿음에서 창안되었다. [vi] 저작물의 무료유포와 이용자체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해 변호
사와 작가가 하나되어 동일한 멜로디라인과 글귀를 찾아 헤매는 저작권법과 온라인상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컨텐츠의 유포와 무료사용이라는 현실의 양극단에서 실리적 합의점을 찾아낸 것으로, 디지털 세계에서 원본성을
고수하고 무료유포를 막는다는 행위자체가 넌센스에 가깝다는 것을 재빨리 알아챈 것이다. 이에 크리에이티브 커
먼스는 ‘디지털 라이센스 태깅’을 통해 저작물의 이용을 원천봉쇄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자유롭게 활용하는 동시에
원작자를 인정하도록 하는 실리적인 해결방식을 제안한다. 특히 커먼스의 ‘샘플링 라이센스’는 작가나 아티스트들
이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작품의 일부를 사용하여 새로운 생산물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허용하는 특별한 인
증장치이다.



디지털 시대의 아우라



뮤지션 비욕(Björk)은 2004년 그녀의 10년전 히트곡 ‘Army of Me’를 리믹스 해주기를 요청하는 메시지를 자신의 웹
사이트에 띄웠다. 팬들과 다른 뮤지션들이 보내온 600개가 넘는 곡들은 ‘Björk Remix Web’을 통해 공개되었으며
비욕은 그 가운데 20곡을 모아 새앨범 을 발표했다. 그 후 리믹스 결과물들을 둘러싼 공개적인
평가와 논의, 또 다른 리믹스 작업들이 쏟아졌고, 이 과정에서 새로운 탤런트가 발견되고 인기 뮤지션들이 탄생했
다. 여전히 많은 저작자들이 자신의 음악을 마음대로 샘플링하는 것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유명 뮤지션들의
법적대응이 화제가 되는 상황에서 그녀의 이러한 시도는 더욱 강력한 호응과 팬덤이 되어 돌아왔다. 특정 만화,
소설, 영화나 작가의 팬들이 원작의 내용을 기반으로 다시 그려내는 팬픽(fan과 fiction의 합성어)은 이러한 리믹
스 문화를 통해 발현된 또 다른 창작물의 형태이다. 얼마전 무라카미 하루키의 원작들을 리믹스한 소설로 화제를
모았던 <회전목마의 데드히트 리믹스>는 하위문화처럼 여겨졌던 팬픽이 기존시장으로 영입된 예이다. 스타워즈
에피소드를 둘러싸고 쏟아져 나왔던 팬픽과 이를 적절히 이용해 스타가 된 무명영화감독의 이야기도 같은 맥락
으로, 리믹스를 통해 문화가 개인화되고 이는 다시 사회적인 것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잘 드러낸다.



‘협력적 리믹스’는 현재의 디지털 문화를 설명하는 키워드가 되었고, 예술가는 작품을 통해 의미의 대립항과 개
개인의 경험을 매개하는 매개자이자 분절되어 있는 정보를 의미있게 재구성하는 디제이가 되었다. 과거를 뒤
짐으로써 미래를 지향하는 리믹스는 또한 타인의 표현성과 창의성을 인정하는 제스츄어라는 점에서 더욱 고무
적이다. 디지털 예술의 아우라는 존재하는가? 발터 벤야민이 기술복제시대에 사라질 것이라 예견한 아우라의
21세기적 생존여부를 따지는 것 보다, 그가 논의의 근간으로 삼았던 사진과 영화가 예술의 몰락이 아닌 새로운
예술의 가능성을 열었음을 기억해 낼 필요가 있다.





“일찌기 사람들은 사진의 예술성 여부를 두고 이러쿵 저러쿵 많은 실랑이를 벌였다. 그러나 그들은 정작 이에 선
행되어야 할 물음, 즉 사진의 발명으로 인해 예술의 전체 성격이 바뀐 것이 아닐까 하는 물음은 제기하지 않았다."
[v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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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즐겨찾기 공유 서비스인 ‘딜리셔스’는 자신의 북마크를 웹상에서 저장하고 관리하는 동시에 키워드 공유나 인
기북마크 리스트를 통해 타인의 북마크 정보를 알 수 있게 해준다. http://del.icio.us/



[ii] 레브 마노비치 <뉴미디어의 언어> 서정신 역. 생각의 나무 (2004)



[iii] 사운드 트랜짓 웹사이트: http://soundtransit.nl/



[iv] The Jack 블로그: http://blog.naver.com/thejack9



[v] 미디어 아트는 흔히 디지털 아트, 테크놀로지 아트, 전자예술, 뉴미디어 예술 등의 표현과 혼용되기도 한다.



[vi] 국내에서 정보공유운동을 펼쳐온 정보공유연대의 ‘정보공유라이선스’도 유사한 함의와 기능을 갖는다. 정보
공유라이선스: http://www.freeuse.or.kr/htm/ , Creative Commons 코리아: http://www.creativecommons.or.kr/



[vii] 발터 벤야민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반성완 옮김.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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