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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음인가요? 2007-01-07
홍철기 조회 : 4,851,
http://themanual.co.kr/zb5/?article_srl=124
[ 소음인가요? ]

몇년 전에 학부때 듣던 수업에서의 얘기다. 그 수업은 철학과 과목이었고, 호모
루덴스던가, 여튼 "놀이하는 인간"에 대한 현상학적 접근을 하는 것이 그 수업의
목적이었다. 개인적으로 무척 존경하는 선생님의 수업이어서 나름 배우는 것도 많
았던 차에 음악에 대한 다음과 같은 토론 아닌 토론이 벌어졌다. 그날 수업의 주
제는 아마도 '음악은 놀이인가'였을텐데, 대뜸 한 학생이 이러는 것이다(정확한
내용이 기억은 나지 않고 핵심적 내용과 쟁점을 재구성한 것이니, 혹시라도 당사
자들이 보면 양해하시기 바란다). "몽고에서는 동물의 뼈나 사람의 뼈로 악기를
만들어서 연주를 하는데, 그것을 듣고 있으면 괴롭다. 그래서 그건 음악이 아니라
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뭐 여기까지는 크게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토론의 쟁점
이 이제 "내가 즐겁게 느끼는가"의 문제로 넘어가버렸다. 그리고 각자 자기가 음
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들, 즉 자신이 즐기지 않는 종류의 음악들을 열거하면
서 그것은 음악이 아니라는 일종의 성토대회장이 되는 것이었다(약간의 과장을 하
면 그렇다는 것이다). 이미 눈치를 챈 분들은 아시겠지만, 당연히 이러면 토론이
든 논쟁이든 물건너 간것이나 다름없다. 이제부터 이야기는 너무나 뻔한 '힙합은
음악인가, 아닌가? 메탈은? 가요는? 고전음악은?'식의 별로 영양가없는 질문들만
오고가게 될 것이다. 물론 그것이 음악이든 미술이든 (뻔한 범주들이지만, 그러나
...) 그것이 어떤 주관적인 인상과 감상, 느낌, 정서를 불러 일으킨다는 점에서,
그것은 생산자에게든, 감상자에게든 마찬가지로 주관적인 측면이 있다는 사실은
결코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작동하는 것인지를 조금이
라도 고민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그러한 주관적인 정서로는 아무것도 해명이 되지
않을뿐더러, 아무런 생산적인 결과물도 만들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전체의 생산과정과 회로 밖으로 이 느낌과 정서를 딱 떼어놓
고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 더 이상 할말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그렇게 따로 분리
시켜놓은 내면의 정서가 공기를 진동하게 만들지도 않으며, 파장인지, 입자인지
알 수 없는 어떤 것을 발하지도 반사시키지도 않기 때문이다(만일 그렇다면 그것
은 초능력이다). 주관적인 정서 자체가 글씨를 한자라도 쓸 수 있겠는가? 듣기 좋
은, 즐거운 소리와 이미지는 사실 그 정서와는 전혀 상관없는 도구들과 공정에 의
해서 제작/산출되는 것이다. 많은 선구자들이 떠들었듯이 그건 공장냄새가 물신풍
기는 엄연한 공산품이다(물론 이런 이미지도 70년대 정도까지만 유효할지도 모르
겠다).

전에 어떤 분이 이 게시판에 "그런 음악을 하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실험적
인 예술이라는 것은 사기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때가 있습니다"는 내용의 질문을
올렸던 적이 있다. 내가 그때 굉장히 감정적으로 반응을 했었는데, 이 자리를 빌
어 사과를 드린다. 여튼 그 질문에 대해 대답을 해보면, 이렇다. 나한테는 공산품
일 뿐만 아니라 "인더스트리얼"이라는 이미지도 한참 낡은 것으로 만드는 이러한
기술/예술을 과거의 회고적인 예술의 이미지와 정서에 맞추기 위해 애를 쓰는 온
갖 주류 예술들이 사기라는 생각이 들뿐이다. 물론 한국의 맥락(아마도 다른 곳에
서도 비슷한 현상이 있겠지만)에서 '실험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매우 조심스럽다
. 왜냐하면 그것은 보통 이미 주류의 반열에 오른 찬양할만한 '실험'을 의미하기
쉽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한국에서의 음악 저널리즘에서 '실험적'이다는 것은 외
국의 이미 권위있는 (혹은 '공신력있는'이라고 해야할까) 누군가가 '실험적'이라
고 인정한 어떤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음악을 생산하는 사람들에게도 이러한 저
널리즘의 영향은 생각보다 크다. 어떤 시도에 대해서도 우선 '그것은 외국에 있는
누가 10년전에 한 것인데요'라는 것이다. 그래서 어쨌다는건가? 여기서 예술은
창조적 과정이 아니라 특허권 경쟁 비슷한 것이 되어 버린다. 게다가 따지고 들어
가보면 그 외국의 누가, 정말 누구인지도 불분명하고, 실제로 누가 있다고 하더라
도 그것은 외형상 비슷한 것이지, 실제로 똑같은 것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실 대부분의 경우 예술적 형식의 동일함, 내지는 유사함이 문제가 되기보다는
대충의 방법과 무엇보다도 '재료'나 '툴(도구)'의 유사함, 동일함 때문에 그런 이
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예를 들어 싸인파를 사용하거나, 씨디 플레이어
, 혹은 노트북을 이용하여 연주하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공통된 조건에서 창조행
위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단순히 부정할 문제는 아니다. 나는 그러한
생각('이건 이미 누군가 한거야')이 자신의 창조의 고유성을 위한 엄격한 원칙이
자, 자기 제한이라면 그에 대해 나름의 존경심을 표하고 싶다. 하지만 과연 그러
한 생각이 그러한 원칙으로 작용하고 있을까에 대해서는 상당히 의문이 든다.

우리 모두는 어느 정도 지금도 열심히 튀고 있는 LP와 CD를 듣고 있고, 버벅대는
mp3를 듣고 있다. 기술적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물론 귀에는 안들리는 범위에서
그러한 오류의 효과를 줄임으로써. 나는 누군가 우리를 속이고 있다는 식의 유치
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 그것은 다시 새로운 내면의 정서로 들어가 내가 즐
겁지 않으면 그것이 음악이 아니다는 식의 어중간한 유아론으로 퇴행하는 것일뿐
이다(나의 그러한 느낌은 어디서 왔는가? 잘 따져보면 아예 어머니 자궁 속으로
되들어가든가, 아니면 TV와 라디오에서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관습적, 혹은 수동적
으로 익숙해졌다는 말말고는 별로 할게 없다. 물론 일상은 중요하며, 듣기 좋다는
느낌 자체도 중요하다. 듣기 안좋은 것은 경우에 따라 몸에, 혹은 귀에 안좋은
것일수 있기 때문에...). 하지만 들리는 것과 기술적 실재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고 감각을 새롭게 할 필요는 있다. 사실 나는 그것을 '필요' 이상의
의무라고 까지 생각하지만. 왜냐하면 그 '사이'에 무한에 가까운 색다른 가능성들
이 잠재해 있기 때문이다. 기술과 감각을 단지 다른 사람의 처분에 완전히 맡겨두
지 않을 어떤 수많은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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